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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우리 교동인씨 세보의 제六회 중간(重刊)인 임인보에 있어서 보사(譜事)기간 중 역사적으로 가장 험난한 때이었음을 상기(想起)되는 바입니다.

서기 一九四五年 을유(乙酉)의 八.一五해방으로 三十六년간 속박(束縛)되었던 왜정(倭政)의 철망을 벗어난 이후 미군정을 거쳐 무자(戊子)에 건국을 보았고, 경인(庚寅)에 六.二五사변을 당하였으며 경자(庚子)에 四.一九학생 혁명과 신축(辛丑)에 五.一六군사혁명이 있었으니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난국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혼란한 시국하에 우리 종족(宗族)의 대사업인 대동보 발간이 곧 실현되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오며 나라에 역사가 있어서 그 나라의 사적을 밝히듯이 각자 내 집의 역사이며, 나아가서 전체 종족(宗族)의 역사인 족보가 있음으로서 그 씨족과 종문(宗門)의 사적을 밝히게 되는 것이니 인류에 있어서는 고금을 막론하고 족보의 필요성과 존엄성은 명백한 바입니다. 한 조상에서 퍼진 여러 자손이 파계(派系)가 어떻게 맺어서 번창해 가고 있는가를 서로 알아서 돈목지의(敦睦之誼)를 더욱 굳게 한다면 그 얼마나 정다웁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이러한 점에서 대동보를 발간하게 된 소이(所以)가 있고 또 그만큼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때마침 국토가 양단된 채 아직 통일을 보지 못하여 북한에 사는 종인(宗人)들의 명단이 빠지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대동보 발간을 계기로 해서 일가끼리 보다 더 화목하고 상부상조(相扶相助)하여 가면서 위로는 조상의 명예를 빛나게 할 것이요, 아래로는 자손들의 번영을 가져오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 바입니다. 불초 의외에 도유사(都有司)의 중임(重任)을 맞게 된 이후 첨종제위의 소망에 적응토록 수행치 못함을 염려하여 오던 바 실무임원 여러분의 부단(不斷)한 노고로써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어 성업(盛業)을 마치게 되니 그 공로가 다대함을 치사(致辭)하면서 이것으로써 서문에 대(代)하는 바입니다.

 

단기 四二九五年(一九六二年) 壬寅 十二月 日 六十一세손 前민의원의원兼재무부장관 泰植 謹序

 

 

편찬위원
도 유 사 태식(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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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무 월환(면천)
재      무 운식(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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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인 응환(면천) 치명(면천) 명수(덕산) 남기(순창) 정진(면천)
서     기 정진(면천)
서     사 영철(온양) 치대(면천) 명진(면천) 유진(면천) 기식(면천) 득환(면천) 순원(천안)